나도 연차가 낮았을 때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가시방석 같았어. 개발자는 코드를 짜고, 디자이너는 화면을 그리는데, '기획자인 나는 대체 오늘 무슨 가치를 만들어냈지?' 하는 생각에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거든. 내 기획서 한 장에 수많은 사람의 리소스가 쓰이는데, 정작 내가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의 그 막막함, 너만 느끼는 게 아니야.

ux product planning

개발자의 "이거 왜 해요?"라는 질문에 얼어붙던 시절

7년 차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가끔 생각나. 주니어 시절, 야심 차게 준비한 기능 명세서를 들고 개발 회의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야. 한 개발자분이 무심하게 "근데 이 기능 왜 넣는 거예요? 유저가 진짜 써요?"라고 물어보시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 통계 데이터나 명확한 근거 없이 그저 '경쟁사에 다 있으니까', '좋아 보여서' 기획했던 거지.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자괴감은 아직도 생생해. 회의실을 나와서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어. 내가 만든 기획서가 그저 남의 것을 베낀 껍데기 같았거든.

'말'로 때우는 기획자가 아닌, '데이터'로 설득하는 기획자로

그 실패 이후로 나는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마음먹었어. 단순히 "이거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 기능이 도입되면 유저의 이탈률이 15% 줄어들고, 매출은 이만큼 상승할 것입니다"라는 숫자를 들고 가기 시작했지.

  • 로그 분석 툴을 붙잡고 유저 행동 데이터를 밤새 분석했어.
  • 타사 벤치마킹을 할 때도 화면만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뜯어봤지.
  • 개발자, 디자이너와 소통할 때 '왜(Why)'를 가장 먼저 설명하려고 애썼어. 이렇게 하니까 신기하게도 협업 부서의 태도가 달라지더라고. 내 기획에 신뢰가 쌓이기 시작한 거야. 심장이 터질 것 같던 회의 시간이 조금씩 기다려지기 시작한 순간이었어.

product planning workshop

살아남는 기획자는 완벽한 기획서가 아닌, '소통의 다리'를 만든다

지금 돌아보면, 주니어 시절의 나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획해서 짠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진짜 살아남는 기획자는 혼자서 완벽한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고. 오히려 내 기획의 빈틈을 인정하고,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빌려 함께 서비스를 완성해 나가는 사람이 진짜 일 잘하는 기획자였어. "제가 이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개발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 그게 7년 동안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였어.

💬 예진의 한마디 기획자는 화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람이야. 네가 가진 불안함은 네가 더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증거니까,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마. 지금 흔들리고 고민하는 그 시간들이 결국 너를 단단한 기획자로 만들어줄 자양분이 될 거야. 네 기획서 한 줄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걸 잊지 마. 언제나 너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할게.